일단 추천이긴 합니다만, 왜 추천인진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단점부터 좀 얘기해봅시다.
심각한 문제들이 몇 가지 있어요.
첫번째로 일러스트 퀄리티가 너무 구립니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그냥 그림을 못 그렸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막 그렸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일하기 싫었던 거 같아요.
그리다 만 듯한 그림들뿐입니다.
사이코스러운 작품 분위기에 어울리게 그리려 노력한 결과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그건 말 그대로 변명일 뿐일 겁니다.
도축이라는 핵심 이벤트도 그 연출이 너무 성의 없습니다. 일러스트 한두 장(막 그린)에 자막만 덕지덕지 붙이고 줌인 줌아웃만 해서 대충 때우고 있는데, 아니 진짜 그냥 제작진들이 일하기 싫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정말로 그렇게밖에 안 보여요.
엄청 잔인한 장면 나올 것처럼 브금은 막 데스메탈 같은 거 틀어 놓고는 일러스트 수위나 도축 내용은 뭔 애들 장난 같아서 개짜치는 느낌도 있고요. 아니 몇몇 개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진짜 잔인한 고문이기는 한데...근데 장난치는 거 같아요. 직접 보면 무슨 뜻인지 아시게 될 겁니다.
포커는 그냥 포커입니다. 좋아할 사람은 좋아할 거고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겠죠. 전 운빨ㅈ망겜이나 도박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뭐 그럭저럭이었습니다.
단, 카드를 자기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거나 하는 개사기 스킬들이 있기 때문에 실제 플레이는 운과는 거리가 멀고, 거의 100퍼센트 실력겜입니다. 다만 이게 게임의 난이도가 높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스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도발'이랑 '천운' 이 두 스킬이 너무 사기입니다. 게다가 게임 극초반부터 바로 배울 수 있어요.
처음부터 쓰기 시작해서 결국 엔딩 때까지 거의 이것만 썼습니다. 가끔 상대 특수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스킬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 외 거의 모든 경우에 도발-천운 콤보가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게임이 아무리 진행되어도 새로운 스킬이나 전략을 발굴해내는 재미가 전혀 없었다는 소리입니다. 그런 상황이니, 보스전을 제외한 모든 포커 경기가 단순 반복 노가다로 변질 됐죠. 돈이랑 SP 벌려고 하는 노가다 말이에요.
이 게임은 한 가지 패턴이 반복됩니다.
적 출현-적 특수능력 확인-대전료 벌기 및 대응책 마련-적 토벌
이 중 대전료 벌기 구간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거 같은데, 단순하게 '시간이 오래 걸려서' 같은 이유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전략을 쓸 여지가 없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똑같은 짓만 무한 반복하게 되니까요.
게다가 설령 다양한 전략을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등록 가능한 스킬의 수가 적다 보니 강력한 스킬 한두 개에 의지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킬 세팅 매번 바꾸긴 너무 귀찮잖아요.
즉 이 게임의 특징인 '스킬을 사용한 포커 경기'에서 스킬 파트가 통째로 잘못 설계되었다는 뜻이죠.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기 때문에 뭐 어떻게 고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고 천운 같은 스킬 너프 잘못 때렸다간 그대로 대책 없는 운빨ㅈ망겜이 되기 십상이니까요.
아니, '꾼'들은 오히려 그런 걸 더 좋아하려나요. 하지만 도박은 원래 운인 척 하는 사기니까...
그나마 보스전에서 적들 특수 능력에 대응하는 부분은 나름 흥미로운 요소였습니다. 게임 스타일이 좀 캐주얼하고 막 나가는 분위기라 그다지 깊이는 없긴 했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것마저도 최종보스에 이르면 개에바참치가 됩니다.
진짜 이거 아이디어 누가 냈는지 몰라도 양쪽 콧구멍에 엄지손가락 한 번 콱 찔러주고 싶네요. 최종전에서만 과장 없이 한 서너 시간 헤맨 거 같은데 나중에 방법 알아냈을 때 멋지고 그럴듯했으면 모든 게 용서 됐겠지만...어처구니 없는 이상한 방법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일단 최종보스의 현실조작 능력으로 한 번 게임오버를 당해야 합니다. 이때 아스하가 과거에 신에게 기도를 올리던 장면들이 회상씬으로 나오면서 '이제 신에게 비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플레이어에게 전달합니다.
쉽게 말해 이 게임에서 아스하가 계속 기도를 올리던 신의 정체는 플레이어였다는 걸 알려주는 겁니다. 4차원의 벽을 뚫고서.
문제는 그래서 우리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냐고요. 기존에 사용하던 모든 방법이 막혀있습니다. 쓸 수 있는 아이템도 없고, 폴드도 못하고, 마우스로 특정 부분을 클릭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데?
정답은, 게임오버 화면에서 타이틀로 돌아가 다시 게임을 시작하고, 파일 로드 화면 한쪽 옆에 있는 꼬비스를 클릭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비스의 현실조작 기능을 끌 수 있는 시스템 설정창이 떠요.
아니...설정에서 그런 기능을 찾아서 끄면 되지 않을까...까진 나도 생각했어! 그런데 그 설정 항목이 왜 옵션창이 아니라 그런 곳에 숨겨져 있는 거냐고. 꼬비스가 마지막에 시스템 시큐리티 어쩌고 떠들다 가긴 했지만, 그게 '로드 화면에 있는 꼬비스 그림을 클릭하면 된다'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 거냐고. 게다가 '재도전'이 아닌 '타이틀 화면'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아내라는 건데! 설정은 설정창에 숨어 있으라고!
특히나 패드로 플레이 하던 저 같은 경우에는, 대놓고 마우스 쓰라고 가르쳐주는 상황이 아니면 애초에 마우스 포인터가 화면에 표시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게임 밖 로드 화면에서 마우스를 쓸 생각을 하기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기껏 신에게 기도했더니 신이 어비스의 현실조작 능력을 카운터 칠 수 있는 더 강한 힘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어비스의 능력을 없애준다는 것도 뭔가 좀 짜치지 않나요. 지금까지도 그런 식이긴 했지만 이건 최종전이잖아요.
전 상대의 스티플보다 더 강한 스티플을 낸다거나 하는 걸 기대했단 말이에요. 상대가 스티플을 못 내게 하는 걸 기대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최종전이니까! 상대방 손발 묶어 놓고 일방적으로 패는 것보단 서로 가장 강한 패를 들고 올인 박아가며 싸우는 게 더 불타오르잖아요. 안 그래요?
자 이제 단점은 충분히 떠든 것 같으니, 이 게임을 추천하는 이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해봅시다.
일단 가격이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 50퍼센트 할인 중이라 만원 남짓한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요. 완성도 높은 게임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살만 합니다.
전체적인 게임의 분위기, 주인공의 성격 같은 게 유쾌하고 시원시원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 해소가 잘 됩니다. 천운 같은 사기 스킬 쓰고 올인 때려 박아서 적들 팍팍 쓰러뜨리는 쾌감도 있고요. 딱 그것만 반복하게 된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스토리도 재밌습니다.
서사의 완성도가 높고 뭐 그렇다는 소리는 아니고요. 그냥 막장 드라마 같은 유치한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그래서 재밌어요. 시간 때우기로 딱입니다.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아무튼 그래서 저는 이 게임을 추천합니다. 다만 사실 거면 꼭 할인 끝나기 전에 사세요. 정가로는 사기 좀 그렇습니다. 쌀 때 사뒀다가 심심할 때 보스 한 마리씩 때려잡는 정도로 가볍게 즐기면 꽤 괜찮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