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원이든지 들어주는 유물인 "검은 책" 의 봉인을 풀고자 하는 젊은 흑마법사의 이야기
약혼자가 불가사의한 이유로 죽은 이후 상실에 찬 주인공이, 일곱 개의 봉인을 풀면 어떠한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유물에 손을 대면서 본격적인 마법사가 되는 어드벤쳐 + 카드배틀 게임이다. 흑마법사라고 하니 뭔 판타지 배경에서 스토리가 벌어지나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시대적 배경은 1800년대 후반 러시아로 의외로 현실적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게임 내 나오는 위치들도 실제로 러시아에 존재하는 공간적인 배경을 많이 채용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악마를 종으로 부린다는 점이나 러시아의 설화에서 나오는 존재들이 실제로 살아있는 것 마냥 나온다는 점에서 오는 허구성과 이러한 "사실적인" 시대상이 합쳐져, 과도하게 판타지적인 이야기보다는 마치 과거에서부터 구전되어 내려온 설화를 체험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Black Book 의 스토리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실제 게임플레이 및 특징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서술해보자면 :
1. 윗 문단에 카드배틀 요소가 있다고 적었는데, 게임 내 나오는 검은 책이 일종의 카드 덱으로 이용되며, 13장 ~ 33장의 카드로 이루어진 본인의 덱을 짜서 적들을 두들겨 패면 된다. 다른 카드배틀에서 보이는 카드들 및 적군의 특징들 - 예를 들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데미지가 오르는 카드, 적들을 소환하거나 상태이상을 다 지워버리는 적의 행동양상, 하스스톤의 방밀처럼 방어력만큼 데미지를 주는 카드 등등 - 을 볼 수 있어 덱빌딩 게임을 해왔다면 쉽게 익숙해지는 카드 배틀들에 부딪칠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Black Book 에서만 볼 수 있다고 느껴진 고유한 특징들도 있어서 카드 배틀들이 진부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고유 특징들에 대해 몇 가지만 적어보자면 :
- 카드들은 크게 규율 / 열쇠, 또는 흑 / 백으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턴당 일정 개수의 규율과 열쇠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덱에 열쇠만 넣는 헛짓을 못 하게 막는다. 규율 카드들이 좀 더 강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두 카드 종류 모두 독특한 능력의 카드들이 있어 한 쪽으로 치우친 덱을 짤 일은 없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흑색 카드들은 공격, 백색 카드들은 방어 능력에 치우쳐져 있다. 이를 이용한 적 기믹이 후반부 적 및 보스들에 나오는데, 이 중 한 색의 카드를 봉인하는 적 공격은 짜증나는 상태이상 중 하나였다.
- 카드들의 순서 및 다른 카드들과의 궁합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특정 카드들의 경우, 같은 색의 카드를 한 턴에 많이 쓸수록 강해진다. 즉, 기본적으로는 방어도 6을 제공하는 백색 카드가, 다른 백색 카드들과 같이 쓴다면 이의 두 배인 12까지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캐릭터가 카드를 사용한다고 해서 즉시 사용되는 카드들은 드물며, 최종적으로 결정을 하기 전까지 카드들의 순서를 정한 뒤에 결정을 할 수 있게 게임이 배려를 해 준다.
- 적과의 전투에서 이기면 덱에 카드를 추가해야 하는데, "어 그러면 이거 덱압축 못 하나요?"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원하는 때마다 덱을 바꿀 수 있어 실시간 덱 편집에 가능하다. 또한, 한 번 보게 된 카드는 돈을 써서 구매를 할 수도 있어서 금전만 충분하다면 원하는 덱을 만들기 상대적으로 쉽다. 다만, 스토리를 진행할수록 새로운 카드들이 해금되며, 일회성 또는 패시브 아이템을 구매할 때도 돈을 소모하니 카드 구매에 돈을 많이 쓰지 않는 걸 권장한다.
2. 게임을 진행하며 카드배틀을 몇 십번 마주하게 될 것이지만, 이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카드배틀만 하는 건 아니다. 본질은 어드벤처 게임이라서, 보스전으로 향하는 길을 탐험하며 사이드 퀘스트들을 해결하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선택을 내려서 이에 맞게 스토리를 진행하는 매력도 있다. 특히 재미가 있었던 점은 카드 배틀이 아니라 진짜로 카드게임 (Durak, 두라크) 를 하면서 전투를 피할 수도 있다. 러시아 설화에 나오는 악마들은 두라크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딴 것 같은데, 처음에는 두라크를 개못해서 카드 배틀만 하다가 어느 정도 실력이 느니까 후반부 가서는 두라크에 중독되었다. (두라크에서 밑장빼기를 할 수 있는 레벨업 특성이 있는 걸 보면, 제작진도 이렇게 두라크로 카드 배틀을 대체하는 걸 권장하는 것 같다 ㅋㅋ) 게임 내 스토리의 경우도 러시아의 문화 및 고전 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주기 때문에 이에 대해 배우는 재미가 있었으며, 생소한 단어들의 경우 마우스를 올리면 설명해 주는 기능도 넣어 두어 스토리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적도록 하였다.
3. 문단의 맨 위에 주인공이 악마를 종처럼 부린다고 했는데, 사실 이 악마들은 (카드배틀 때 도와주는 역할이 아니라) 나쁜 일을 시키지 않으면 주인공을 괴롭히게 되는 일종의 디버프로 작용한다. 그러나 나쁜 일을 시키게 되면 주인공의 죄악 수치가 높아진다. 죄악 수치의 경우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부도덕한 선택을 내리거나, 악마들을 부려 나쁜 일을 시키면 올라가게 되는데, 게임 진행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게임플레이 상에서는, 죄악을 올리는 대신 유리한 효과를 주는 카드 및 패시브 아이템들 때문에 게임을 편하게 진행하려다 죄악이 폭발하는 걸 볼 수 있다) 엔딩 분기에서 수치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130 이상이면 "악한 엔딩", 그 이하이면 "선한 엔딩" 분기로 진입할 수 있다. "어 그러면 130 넘었으면 어짜피 엔딩 분기 고정되었는데, 한 500까지 올려도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안 미치지 않나요?"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래도, 이 죄악 수치는 왠만하면 너무 안 올리는 게 좋다. 왜 이렇게 말하냐고? 1회차 때 1700을 넘긴 사람이 쓰는 평가이니 제발 믿기를 바란다 .........
결론적으로, 러시아 설화를 기반으로 한 텍스트 기반 어드벤쳐 + 독특하면서도 난이도가 과하게 어렵지 않아 입문하게 쉬운 카드 배틀 = 세계관이 인상적이면서 게임성과 재미도 충분히 잡은 게임이라 추천. 약 15시간 정도의 플레이타임에 걸쳐 엔딩을 볼 수 있어서 가격 대비 플레이타임은 적절하지만, 텍스트가 꽤 많이 나오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일반적인 카드 게임보다는 재미가 훨씬 덜 할 것이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여담) 난이도는 일반 난이도로 진행하였는데, 소모성 아이템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엔딩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내가 카드게임 좀 한다 ! 라고 생각한다면 난이도를 올려서 진행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