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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전작과 확연히 달라진 장르
키코니아 울 적에는 쓰르라미 울 적에 로 유명한 용기사07의 신작이다. 필자는 10여년 전 쓰르라미 울적에 를 굉장히 재미있게 플레이하였고, 후속인 괭이갈매기 울 적에도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괜찮게 플레이했기에 42000원이라는 조금 비쌀 수 있는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고 본작을 구매하였다.
키코니아 울 적에는 미스터리, 고어, 판타지가 적절히 결합된 전작들과 비교할 때 다소 이질적이다. 본작의 장르를 정의해보자면, sf디스토피아 겸 사회비판물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좁은 공간적 배경 속의 고어나 미스터리함보다는, 세계 전체를 무대로 벌어지는 거대한 사건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군상극, 동시의 이를 통해 던지는 미래 사회의 여러 화두에 대한 고찰이 주를 이룬다. 물론 총 4편 예정 중 1편이므로 세계관 및 인물들에 대한 수많은 비밀과 복선들이 제시되며 이는 본작에 대한 흥미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쓰르라미 울 적에는 모두가 진정으로 소통하고 힘을 합치면 참극으로 대표되는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 는 다소 뻔하다면 뻔한 주제를 자극적인 묘사랑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맛깔나게 제시하였다. 반면 키코니아 울 적에는 일면으로는 쓰르라미 울 적에의 주제의식과 통하면서도 전반적으로 훨씬 스케일이 크면서 현실에 기반한 화두를 던진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서 이어간다.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하여 평화를 지킬 수 있는가?
키코니아 울 적에의 배경은 A3W(3차 세계대전 이후, After Third World War),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00년 이상이 지난 세계다. 세계는 AOU(환북극해 연합), COU(환중앙양(인도양)연합), ABN(유럽중동연합), ACR(아프리카연합왕국), LATO(라틴아메리카 대륙조약기구) 총 5개의 연합으로 나누어져 있다.
3차 대전을 통해 지구가 멸망할 정도의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세계는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고자 한다. 한 때는 군사력을 모두 포기하자는 주장이 횡행하며 군인을 멸시하는 풍조가 퍼졌으나 이는 국가 간 세력 균형 붕괴를 가져와 더욱 큰 혼란을 가져 왔다. 그래서 세계 5연합은 '평화의 벽'이라는 기치 아래 군사력의 균형을 이루어 평화를 수호하고자 한다. 그 결과 군인은 평화의 파수꾼으로 각광받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기에 주인공 미타케 미야오를 비롯한 건틀릿 나이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일명 공수기병이라 불리는 이들로, 왼팔에 특수장비를 장착하면 마치 슈퍼 히어로처럼 하늘을 날고 모든 공격을 실드로 방어하며 첨단 화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무적의 병사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의 적성 평가와 철저한 테스트를 통하여 선발된 가히 천재 중의 천재들이다.
작중 초반에는 아직 이들이 실전투입이 된 적이 없고 평화군기제의 가상 공간에서 활약한 것이 전부이기에 일종의 E-스포츠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미명 하에 수면 아래에서 음모를 꾸미는 3명의 왕들로 인해 사실상의 제4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건틀릿 나이트의 수는 곧 각 국가연합의 전력이 된다. 전장의 게임 체인저가 된 것이다.
미야오는 평화군기제에서 각 국가연합의 건틀릿 나이트들과 친교를 가지며 우리들은 모두 친구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분쟁과 여론 조작 등으로 인해 세계는 전쟁의 길로 나아간다. A3W의 전쟁은 소수의 건틀릿 나이트와 무인병기가 하는 것이기에 많은 이들은 전쟁을 너무나 손쉽게 생각하고 있다. 미야오는 사람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금 평화를 말할 시기가 올 때까지 싸우되 서로 죽고 죽이지 말자는 이념을 공유하는 건틀릿 나이트들과 함께 기사단(A3W세계에서는 그냥 뜻이 맞는 이들의 모임 정도의 의미)을 발족시킨다. 물론 싸움의 피해를 아예 없앨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선에서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사람들의 분노 감정이 최대한 덜 쌓이도록 노력한다.
물론 시간이 지난다고 한들 사람들이 전쟁의 광기에서 되돌아 올 수 있을 것인가?, 강한 힘을 가졌으나 자신들은 그저 군인이라는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한 존재들인가? 라는 회의감 등의 부정적 감정들도 잘 다루어진다. 하지만 미야오는, 용기사07은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실마리는 탐욕에 찌든 노인이 아니라 아직 때묻지 않은 젊은이들의 화합이라고 역설하는 듯 하다. 이는 작중 내내 비교적 잘 이루어지지만, 휴전 직전 건틀릿 나이트들이 전투를 짜고 치고 있었다는 것이 발각된다. 계속 전투 행위에서 사보타주를 일으키면 건틀릿 나이트 자격을 박탈할 것이라는 협박에 일부가 굴복하면서 결국 각 진영은 친구임에도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가상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는 모두가 우정을 노래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죽지 말고 죽이지 말자 라는 이념을 제창한 미야오가 결국 아버지의 개입으로 인해 링지를 죽이고 마는, 그렇게 가상에서도 현실에서도 모두가 사라져가는, 탐욕에 찌든 어른들을 끝내 꺾지 못했다는 비극을 극대화하는 본작 마지막 연출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결국 건틀릿 나이트들은 어른들의 입장에서 제목 그대로 '대체할 수 있는 그대들'이었을 뿐이었다.
용기사07의 전작이 그랬듯 전체 스토리 초반에는 비극을 보여줌과 동시에 실날같은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준다. 아직 수많은 떡밥과 비밀들이 남은 가운데 후속작에서 미야오는 전쟁의 비극을 타파하고 평화를 심을 보다 나은 대책을 찾을 수 있을까?
치밀한 미래 사회의 묘사
3차 대전 이후의 세계는 필자와 같이 A2W(2차 대전 이후 시대)에 속한 사람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본작에서 다룬 요소들 중 필자가 인상깊게 본 부분을 몇 개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출산에 대한 관념이다. 물론 5개연합에 마다 또 따르지만, 주인공 일행이 속한 AOU의 경우 신생아의 대부분은 인공 인큐베이터를 통해 태어난다. 미야오처럼 자연 분만을 통해 태어난 이들은 소수에 속하며 황새(키코니아)가 물어다 주었다 라는 표현에서 따라서 황새 출신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부모라는 개념을 아예 모르며, 타 세대와의 교류가 부족하고, 그래서 공감 능력이 굉장히 결여된다. 자연 분만을 할 수 있지만, 그 경우 양육에 대한 책임을 방기할 경우 감옥까지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주인공 일행은 자연 분만에 대한 약간의 동경을 표하면서도 10년 이상의 세월을 양육에 투자하는 것에 거부감을 표한다. 준비가 되고 애를 낳으려 하자니 나이가 너무 들었을 것 같고.... '과거에는 별 생각 없이 출산을 했는데 근래에는 출산에 대하여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출산율이 줄어들었다'라는 말은 곱씹을 만하다. '아이 좀 키우다가 힘들면 공장에 다시 맡기면 좋을 텐데'라는 제이든의 말은 출산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가 많아지면서 바뀐 도덕 관념을 보여준다.
AOU에서 행해지는 유전자를 통한 적성 검사도 기억에 남는다. 애니 사이코패스에서 나오는 시빌라 시스템을 통한 적성 체크랑 유사한 듯 한데, 상대적으로 뛰어 나지 못한 적성을 타고난 이들에 대한 멸시 표현이 철저히 검열된다는 점에서 좀 더 인권을 중시하는 듯 하다. 실제로 AOU의 대부분 사람들은 항상 회화를 검열하는 AI의 힘을 빌린다. 혹시라도 멸시 표현으로 보일 만한 요소가 나왔을 때 자동으로 표현을 순화시켜 주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의 사람들은 검열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신기해 한다. 하지만 적성을 타고나지 못한 이들, 특히 건틀릿 나이트처럼 초앨리트에게만 허용되는 직군에 도전하려는 이들한테 낮은 적성은 벽이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과 간절함을 이용하여 성접대를 시키거나, 훈련을 빙자한 가혹한 학대 및 인체실험을 하는 어른들의 모습 또한 묘사된다. 특히 훈련병들 대다수가 진짜 키우고자 하는 앨리트의 자신감을 높이기 위한 희생양이라는 교관들의 말은 섬뜩하게 들린다. 이런 걸 보면 사회라는 것은 아무리 이상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도 추악한 모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듯 싶다. 스스로의 적성을 잘 모른채 헤매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까?, 사회가 시행착오를 줄여준다는 명분 하에 적성을 평가해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필자의 관념에서는 전자지만, 본작 등장인물들의 관점에서는 후자로 보인다. 결국 인식이라는 것도 살아온 경험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역사의 기억을 봉인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 과거사 등에 대한 의견 불일치에서 비롯됬다는 주장이 있었고 결국 역사 그 자체를 말소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A3W 세계의 대다수는 3차 대전이 왜 일어났는지조차 모른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헤쳐나갈 지혜를 얻는다는 시각이 아니라, 역사라는 것이 분쟁의 씨앗이 되기에 말소시킨다는 시각.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또한 지난 일을 파헤치면서, 누군가랑 비교하면서 불만지수가 늘고 이민이 늘고 난민 문제가 증폭하면서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을 감안하여 행복지수를 높인다는 미명 하에 사실상의 선전방송을 하는 것. 대의명분 하에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결국 하는 행위는 선전선동이 아닌가? 전쟁을 막는다는 미명 하에 과거의 기억을 봉인하며 불만 그 자체를 없애려 하는 시도가 결국 국민을 우민으로 만들고 전쟁 선동에 쉽게 넘어가도록 할 위험도 있는 것 아닐까? 실제로 본작의 경우, 타 세대와의 교류 경험도 없고, 전쟁 자체가 거의 다 무인병기랑 건틀릿 나이트가 하는 것이기에 피부에 와닿지 않아 무분별하게 전쟁을 지지하는 이들이 묘사횐다. 만약 이들이 역사를 배워서 전쟁의 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다면 조금은 선동에 덜 넘어가지 않았을까?
마무리: 앞으로의 내용이 기대된다
일단 1편만 보면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전쟁을 획책하는 어른들과 평화를 수호하고자 하는 젊은 건틀릿 나이트들의 대립, 그들이 속해 있는 미래 사회의 부조리함의 디테일한 묘사, 뒷 내용을 기대하게 만드는 수많은 떡밥들, 전작에 비해 발전한 비주얼 노벨로서의 연출이 눈에 띄는 수작이라 할 만한다. 특히 글에 다 담지는 못 했지만 미래 사회에 대한 여러 고찰은 용기사07이 정말 생각을 많이 하고 이 작품을 썼음을 느끼게 해 준다. 스팀의 가격이 부담된다면 가격이 떨어지고 나서라도 꼭 해 보시기를 권유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