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 또한 '시'를 읽지도,
심지어 그것이 '무엇' 인지도, 최소한 '어떤' 것인지 조차 감도 못 잡고,
결국 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영영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시적이다, 감성적이다 라는 표현들 조차 어색하고 부끄러워
내면화할 시도하기 전에 '갬성'이라는 적당한 멸칭으로
그것을 적당히 둘러대며 넘기고, 진지하게 받아드릴 기회를 스스로 묵살한다.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 게이머들이 스팀에서 이 게임을 구동하고
자신의 마우스와 키보드, 컨트롤러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닌
시를 읊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흔쾌히 받아드릴 수 있을까?
나 또한 마찬가지다, 시 한편 읽을 시간에 게임을 할 것이다.
'시' 라는게 무엇인지 잊고 지낸지 너무나 오래됐다.
하지만 켄터키 루트 제로는 단순히 '시' 한편을 읽어가는 것을 넘어
'시' 한편을 쓰고 있는 감각을 되살려준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플레이어에게 쥐어주는 이 선택들은 마치
내 스스로가 시를 써내려가는 듯한 착각에 들게한다.
나는 화면에 나오는 글귀를 읽고 있고, 환경은 바뀌며, 캐릭터는 걷고 있으며
끊임 없이 귀를 자극하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엑스박스 4세대 컨트롤러를 통해 각 상황에 따라 진동이 전달된다.
오묘한 대화 속 수사학, 인물 시점의 끊임 없는 전환.
지금의 나로써는 알 수 없는 심볼리즘과 메타포.
초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그리고 감각이 곤두선
시적인 순간들에서 나는 끊임 없이 누군가가 되어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시라는 전통적인 구닥다리 매체가 끊임없이 노력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던 감각과 정보, 그리고 은유를
게임이라는 가죽을 쓰고 그 이전의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나는 시를 읽음에도 불구하고 컨트롤러를 잡고 내 캐릭터를 이리저리 휘두르기에
이 시의 흐름에 대한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그것이 새롭고 즐겁다.
모두를 위한 게임은 아니다.
이건 이전 세대, 우리 세대, 앞으로의 세대가 그렇듯이
모든 사람들이 시, 산문을 즐기지 않았음에 너무 당연한 것이다.
서점에도 도서관에도 안가고, 가더라도 시, 문학 코너는 눈길도 안 준채
수험서, 서적, 경영, 자기개발서를 향해 곧장 발을 옮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무도 책장에 시집을 채워두지 않는 사회에서
한편의 시를 게임으로 둔갑시켜 누군가의 스팀 라이브러리로 침투시키는 것은
어찌보면 합리적이지만 놀라운 선택이다.
그리고 성공적인 탈바꿈이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할 땐 방의 불을 다 끄고
웬만하면 이어폰, 헤드셋을 끼거나 아니면 소리를 좀 크게 키우고 게임하면 좋다.
컨트롤러도 진동아웃풋이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어서 여러모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