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수작이고 나도 추천하는 작품이나, 어차피 호평은 많으니 아쉬운 점 위주로 씀. 가장 큰 장점은 여타 동류의 게임을 압도하는 양질의 CG. 흡사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컷이 수없이 삽입되었으며, 보통이라면 텍스트로 떼웠을 시덥잖은 장면들까지 대충 넘기지 않았고 퀄리티도 뛰어나다. 캐릭터성도 전반적으로 양호하고 디자인은 훌륭하다. 몬스터랑 메카닉 일러스트레이터가 따로 있는 거 보고 좀 놀랐음. 혼자만 다른 게임인 것 같은 최종보스 디자인이 압권. 성인 게임이 아니라 수위는 낮지만 나름대로 꼴릿한 구도를 잡아 서비스신도 제공한다. 의외로 꼴린다. 개인적으로 금발벽안에 환장하는데 테라 디자인 보고 세나 생각나서 안 살 수가 없었음. 아무튼 눈정화 하나는 보장한다. 진부하다고 느끼기 쉬운 설정들도 시각적으로 워낙 준수하게 녹여내서 그러한 느낌을 덜어준다. 중간중간 삽입된 미국 카툰풍 애니메이션은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데, 매우 참신한 시도면서 그 수도 많고 퀄리티도 좋다. 사운드의 경우 우선 BGM은 좋다.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39번 트랙 Action은 ‘갤럭시’의 느낌이 잘 드러나는 신나고 경쾌한 테마이며 스토리와 관련있는 클래식 BGM을 비롯하여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만족스럽게끔 채워넣었다. 크시코스의 우편마차를 어레인지한 최종보스전 BGM은 취향저격이었음. 보컬 곡도 좋다. 飢餓と宝玉, 蒼い星는 필청 추천. 더빙의 경우 풀보이스 더빙이며 더빙 자체도 양호하게 잘 된 편. 개인적으로 캐스팅이 아쉬운 캐릭터들이 있는데, 말그대로 개인적인 부분이니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대신, 정말 잘 뽑았다고 생각되는 캐릭터도 있는데 이건 칭찬이니까 그냥 말한다. 루리(CV. 파이루즈 아이)는 자신있게 엄지를 치켜세울 수 있다. 성우의 대표역인 히비키보다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함. 스토리는 극찬할 정도로 뛰어난 건 아니지만 충분히 좋다. 흔히 생각하는 미소녀 게임과 차별화되는 스토리를 쓰려고 하였고 그것 자체는 성공했는데, 그럼에도 ‘참신함’보다는 ‘진부함’에 가까운 스토리이긴 하다. 왜냐면 이게 미소녀 게임에서는 비교적 흔치 않은데, 다른 게임이나 만화 등지에서는 어렵잖게 볼 수 있는 스토리이기 때문. 플롯이나 설정도 ‘어디서 본 거 같은 그거’다. 어느 정도는 게임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스토리상 허술한 부분도 적잖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인 비주얼과 사운드를 살려 스토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주인공 마르코의 인생과 아르코와의 관계 를 잘 표현했기에 나는 충분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급발진은 솔직히 좀 깼지만. 정리하면, 비주얼, 캐릭터, BGM, 더빙, 스토리, 설정까지 비주얼 노벨에 있어 중요한 요소들은 모두 잘 뽑은 작품. 이러니 추천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럼 대체 뭐가 아쉽냐 하면, 볼륨. 짧다. 가성비에 입각한 이야기가 아니다. 난 본작의 퀄리티가 빈약한 플레이타임을 덮어버릴 정도라고 생각하므로 ‘플레이타임이 짧다’고 이야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가성비가 떨어진다’라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도 지적하는 이유는 본작을 하다보면, 한마디로 말해 굉장히 정신없다 는 느낌을 받게 되리라고 자신하는데, 짧은 볼륨이 그 원인 제공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본작의 단점은 이렇다. 1. 개그와 시리어스의 완급 조절이 안 된다. 2. 캐릭터가 별 의미 없이 너무 많다. 3. 전개가 지나칠 정도로 산만하다. 4. 캐릭터 관계가 잡히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하나하나 보자. 우선 1. 개그와 시리어스의 완급 조절이 잘 안 된다는 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보통 개그와 시리어스가 적당히 접목된 작품들의 경우 개그 파트와 시리어스 파티를 분리하여 전개된다. 대표적으로 게임은 아니지만 만화 ‘은혼’을 들 수 있겠다. 시리어스에서도 개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빈도와 중요도는 확연히 줄어든다. 때문에 독자들은 일상 에피소드에서 캐릭터들의 개그를 보면서 1차로 재미를 느끼고, 그렇게 형성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풀어내는 시리어스 파트의 스토리에 더해 캐릭터의 또다른 매력적인 모습을 보면서 2차로 재미를 느낀다. 개그 파트에서는 흥미를, 시리어스 파트에서는 몰입도를 잡아내는데 각 파트에서 추구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내서 잡아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본작은 어떻게 진행되느냐. 시리어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판으로 깔고(그 와중에 대놓고 개그판인 부분이 없진 않다) 그 위에서 계속 개그를 한다. 나는 이게 짧은 볼륨에 개그, 시리어스를 다 집어넣고 싶었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의도한 바라면 이건 제작진의 패착이라고 본다.) 이 전개의 문제점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느 장단에 춤추란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준다는 건데 본작을 해보면 아마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통일감 없는 노선 때문에 괜찮은 스토리와 캐릭터성의 전달력도 떨어진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상황이다. -A(보통)- 개그-개그-개그-시리어스-개그-개그-개그-시리어스 -B(본작)- \개그개그개그개그개그개그개그개그개개개개그그그그시리엇/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리어어어어어어어스개그개그시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스 혼란하다 혼란해. 2.은 간단하다. 캐릭터의 디자인과 성격을 잘 뽑아놓고도 볼륨이 너무 짧아서 캐릭터 하나하나의 활약상은 의외로 별 거 없는 편. 캐릭터의 용도가 대동소이하거나 비중이 유독 떨어지는 등의 모습이 보이는데, 결국 적은 활약상에서 비롯되는 문제고 여기에는 짧은 볼륨이 기여한 바가 없지 않다. 차라리 캐릭터를 잘 못 뽑았거나 적당한 캐릭터로 떼웠으면 그냥 넘어갈 부분인데 캐릭터를 너무 잘 뽑아버려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 특히 다른 캐릭터들은 뭐 그렇다치겠는데 아르코는 중요성에 비해 극중 비중이 너무 떨어진다. 캐릭터를 줄이더라도 아르코는 더 자주 비췄어야 한다고 봄. 3.의 경우 다방면으로 뻗어가는 전개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굳이 전개를 저렇게 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수확물이 적다. 다방면 전개는 말하자면,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각각의 전개가 저마다의 성과를 거둬와서 메인 스토리를 더 탄탄하게 보충해주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본작은 메인 스토리는 이미 확고하게 떡하니 서있고, 각각의 전개들은 메인 스토리에서 쑥 튀어나와서 몇 발 갔다가 다시 메인 스토리로 쏙 들어간다. 가지는 튀어나와서 보기엔 난잡해졌는데 메인 스토리는 딱히 영향받은 게 없다. 결국 쓸데없이 산만하다는 인상밖에 안 남는 것이다. 볼륨이라도 길었다면 메인 스토리가 튼실해지니 튀어나온 곁가지들이 상대적으로 덜 눈에 띄든가, 아니면 시간적 여유가 되니 나가기만 급급했던 곁가지들이 성과를 거둬서 메인 스토리로 잘 돌아온다든가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4.은 흔히 말하는 급전개다. 2.과 연관되는 부분도 많다. 정확히 말하면 스토리 자체는 크게 급전개라는 느낌을 받을 것 없이 적당한 복선 삽입과 인물 투입, 내용 전개를 통해 무난하게 흘러간다.(바꿔 말하면 메인 스토리를 풀어가기에는 적당한 볼륨. 따라서, 이 볼륨을 유지할 거면 캐릭터를 줄이든가, 아니면 빌런을 늘려서 자연스럽게 볼륨도 늘리든가 했어야 한다고 봄.) 그러나 이 과정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캐릭터들의 인간 관계가 너무 급격하게 형성되어, 아무래도 플레이어는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는 정도가 떨어지게 된다. 극중 처음으로 만난 인물들이 아니라 원래부터 알고 지냈던 주인공과 아르코와의 관계마저도 작품 내에서 풀어낸 정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었거든. 이것들이 종합되어 상술한 ‘정신없다’는 느낌을 주는데, 넉넉한 볼륨이 받쳐줬다면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앞에서 볼륨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그랬다간 필연적으로 더 비싸졌겠지만(사실 내수판은 줜니 비싼데 스팀판은 왜 저렴한지 잘 모르겠음) 나는 돈 더 주더라도 완성도 높은 게임을 하는 게 좋아서. 현재도 완성도가 미흡한 작품은 절대 아니지만 상술했듯 비주얼 노벨에 중요한 요소들을 너무 잘 뽑아놔서 아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쉬운 점을 하나 더하자면, 비주얼 노벨에 중요한 요소들을 잘 갖추고도, 비주얼 노벨로서의 면모는 잘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주얼 노벨보다 애니메이션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비주얼 노벨의 강점을 활용하지 못했다. 비주얼 노벨은 애니메이션이 담아내지 못할 방대한 분량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비교우위고, 작품에 따라 플레이어의 선택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그러나 본작은 이러한 무기들을 거의 활용하지 못한 바람에 ‘비주얼’은 훌륭하지만 ‘노벨’로서는 썩 대단할 게 없다. 누군가 “비주얼 때문이면 그냥 애니를 보지 뭐하러 (애니에 비해) 비싼 돈 주고 이거 함?”이라는 혹평을 날린다면 통쾌하게 반박할 말이 없다. 보통의 비주얼 노벨이면 상술한 비주얼 노벨의 강점들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본작은 말했듯이 그러한 강점들을 살리지 못했고, 그렇다고 본작의 요소들이 애니와 비교했을 때 대체재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냐고 하면 그 정도는 또 아니란 게 문제. 미니게임이 있긴 한데 이거 게임이라 하기도 좀 뭐함. 영상 보다 중간에 튀어나오는 게임 광고 보면 얘를 끌어다 넣어보세요! 이거 끌어서 쏴보세요! 이지랄하는 것들 있잖아. 그거보다 약간 나은 정도? 간단한 예로 만약 본작을 애니화한다고 치자. 일단 원작 볼륨이 작아서 애니로 만든다고 짤려나갈 부분도 딱히 없고 있다고 해도 별 내용 아닐 거다. 그런 상황에 애니에 비해 비주얼 노벨인 본작이 갖는 특색, 애니를 마다하고 본작을 반드시 해야지만 느낄 수 있는 매력 같은 게 있냐고 하면 내가 봤을 땐 없다. 페스나 UBW 애니가 잘 뽑혔음에도 원작을 해야하는 이유를 댈 수 있는데, 본작은 그렇게 못하겠단 거다. 사실 보통 비주얼 노벨과 애니를 비교하진 않는데, 얘는 역설적으로 비주얼을 너무 잘 뽑아서 애니랑 비교하게 된다. 이건 어떻게 보면 대단한 일 아닌가? 여기에 노벨도 잘 뽑았어봐. 이러니 아쉬움이 안 남을 수가 있나. 마치 경기 내내 압도적으로 예술적으로 두들겨팼는데 경기 결과는 1-0 승리인 축구 경기를 보는 느낌, 류현진급 포텐을 갖춘 선수가 장원삼급으로 큰 느낌, 전투력은 강한데 유효타를 못 때리는 셀전 트랭크스를 보는 느낌. 물론 1-0 승리도 승리고, 장원삼은 뛰어난 선수며, 트랭크스는 강하단 것을 알고 있지만 떨쳐낼 수 없는 일말의 아쉬움. ‘아쉽다’는 말을 글에 몇 번을 썼는지 모르겠음. 그 정도로 장점이 막강하고 포텐셜이 짱짱했다. 끝으로 이건 정말 개인적인 불만인데 ‘시장’ 캐릭터 왜 로리로 박아놨는지 모르겠음. 정말로 어린애인 건 아니고 일본 만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합법로리 계열인데 본작의 분위기가 개그로 포장하긴 했어도 알맹이는 시리어스라서 매치가 잘 안 됨. 혹여나 이 캐릭터의 팬이 있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얘는 왜 나왔는지 잘 모르겠음. 어느 정도냐면 시나리오 다 구성해놓으니까 위에서 "야 이거 씹덕들한테 파는 거니까 로리 하나 넣어봐"라고 해서 억지로 낑겨넣은 느낌일 정도임. 씹덕들은 로리 박아주면 무조건 좋아하겠지? 같은 생각으로 넣은 것 같은데...어..근데 이거 막상 쓰려니까 틀린 생각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서 못 쓰겠다. 다른 씹덕들의 심리를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