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음.
에피소드마다 플레이 방식을 바꾸고, 작은 주제를 넣은 게 정말 좋았음.
20시간이 넘는 쯔꾸르는 자칫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한 것 같음.
에피소드마다 들어간 주제가 꽤 뚜렷하고 깊이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하다 보니 사람에 따라 유치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음.
캐릭터들마다 상징하는 개념이 있어서 클리셰적인 캐릭터들에 입체적인 느낌을 부여해줌.
전체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나 구성이 상당히 좋았던 것 같음.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감동적이고 재밌음.
서사 자체는 진부하지만 괜찮게 잘 짠 것 같음. 특히 마담 코핀 나올 때 마다 존나 재밌어짐.
후반부로 갈 수록 필력이 떨어지는 것도 큰 단점.
점점 스토리가 작위적으로 변하고 개연성이 이상한 부분들도 눈에 띄게 많아짐.
장점에 비해 단점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편이고, 씹덕스러움을 제외하면 상당히 잘 만든 게임이라고 생각함.
오글거리고 유치한 걸 죽어도 못 보는 성향이 아니라면 꼭 해봤으면 좋겠음.
아래는 개연성,연출에 대한 비판과 내가 게임에서 느낀 점임.
개연성이 이상하다고 느낀 부분들을 정리해봄 (큰 스포일러)
지노가 폭로한다고 나온 USB는 도대체 왜 나온 건지 모르겠음. 그 이후 즉시 폭발 때문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해도 전개상 등장할 이유가 전혀 없었음.
일러스트까지 그려 놓고 까먹은 건가...
또 대체 리벨리오는 마리의 차를 폭파 시킨 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전까지 솔리드 8과 루체 마리의 대립 구도를 형성 해 놓고 저 이후로 아무런 등장이 없음.
조심스럽고 개인적인 추측인데, 원래는 솔리드 8과 마리가 싸우는 구도를 만들려고 하다가 지노의 서사가 떠올랐고 그런 스토리로 변경 한 게 아닐까?
그렇다고 생각하면 USB가 갑자기 언급도 안되는 이유와 리벨리오가 마리를 쫓지 않은 이유가 다 설명됨.
부자연스러운 부분들도 다 메꿔지고. 아무튼 이 부분은 조금 신경 쓰였음.
아래는 최종전 연출에 대한 아주 큰 불만임. (작은 스포일러)
노엘이 동료의 의지를 이은 기술을 사용할 떄 마다 러셀이 "뭐라고!!! 이건 XX의 기술인가!"" 하고 "좋다! 그 공격 맞아주지" 를 반복하는데 너무 단조롭고 유치해서 몰입이 심하게 깨짐.
이 게임은 플레이 경험보다는 대사나 연출이 동력이 되는 게임인데, 그 부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다면 게임의 큰 장점 하나가 가려지는거임. 마지막에 설정 변경이나 제작 시간 부족이 있었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음.
아래는 게임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한 간단한 해석 겸 느낀 점임.
내가 생각하는 이 게임의 키워드는 부조리라고 느낌.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부조리한 운명을 겪고 그 부조리를 각자의 방법으로 타개하려고 노력함.
오스카는 정의를, 마담 코핀은 인생을 거는 스릴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삼은 거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건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의지임.
특히 리벨리오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리벨리오는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음.
자신 또한 그랬듯이 끊임없이 노엘에게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할 것을 제안함.
자신이 동료를 살린 선택 또한 그런 타협점일 뿐이라서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던 거지.
그러나 자신과 같은 상황에서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여준 노엘과 후고를 만나 그런 생각이 옳았던 건지 점점 고민하는 계기가 됨.
그러다 자신의 삶에 끼어든 부조리에게 복수 할(스피카를 죽일) 계기가 생겼지만, 그는 그러지 않음.
부조리 또한 자신의 운명이고, 그 속에 순수함과 행복이 있음을 인정하기로 한 거지.
너무나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오히려 그 속에 들어있는 희망과 행복을 찾지 못한 아이러니한 캐릭터였음.
이런 부분에서 러셀과 노엘 또한 재밌는 대비가 보인다고 생각함.
둘은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데, 마인명부터가 가학과 피학으로 나뉨.
또한 스스로에게 주어진 운명에 노엘은 자긍심을, 러셀은 혐오감을 느끼고 러셀은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엘은 운명을 되찾기 위해 악마와 계약함.
둘은 자신의 목적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지만, 러셀은 계약의 대가를 타인에게 떠넘기고, 노엘은 자신이 오롯이 받아내지.
그렇기에 결말부에서도 서로 아이러니한 운명이 씌워진거임.
노엘은 꿈을 이루고 죽었지만, 러셀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남음.
러셀에게 라플라스 시장이니 태초의 악마니 하는 건 결국 수단일 뿐임.
그의 진정한 꿈은 자신을 옭아맨 사슬을 모두 끊고 자유로워지는 것이었음.
그런데 자신이 진심으로 바라던 자유를 자신과 다르게 대가를 피하지 않은 노엘에게서 보게 됨.
자신에게는 진정으로 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용기가 턱 없이 모자랐다는 걸 깨닫게 된 거지.
이게 시장으로서, 그리고 러셀이라는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파멸이 아닐까 싶음.
마지막 노엘의 부활은 우리는 부조리를 피할 수 없지만 기적이라는 건 그 모든 걸 감내하고 나아간 자에게 주어진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음.
이미 파멸한 그는 명성이 무색하게 뜬금없이 저격당해 죽고, 노엘은 기적처럼 부활한거지.
마무리를 짓자면 누구든지 노엘과 러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음.
불확실한 운명에 모든 걸 걸기에는 인생은 언제든 되풀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잖아.
부조리한 운명 앞에서 비극적인 사건은 누구에게나 이유 없이 일어나고, 주어진 자유는 매 순간 선택을 강요함.
우리에게 주어진 괴로움 중에서 어떤 괴로움을 골라야 할까?
비극만이 주어졌다는 이유 만으로 우리의 선택은 무가치한 걸까?
리벨리오의 파트에서 이 게임은 내게 제안을 건내는 것처럼 느껴졌음.
우선 자신의 운명에 대한 관점을 바꿔보는 게 어떨까?
비극적인 운명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그 속에도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기쁨이 있음을 인정하자는 거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어 보였던 우리의 나약한 선택들에도 가슴을 펼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자신의 인생을 망친 스피카를 비로소 용서하게 된 리벨리오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