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스티지안 소프트웨어 (Stygian Software) 출시: 2015 감독: 데잔 라디시치 (Dejan Radisic) 어려움 난이도 클리어 2012년 전후로 시작된 롤플레잉 게임 관련 크라우드 펀딩의 바람을 타고 여러 RPG들이 탄생했다. 웨이스트랜드 2,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디비니티 같은 꽤 유명한 게임들을 비롯해 인디 쪽에서도 게이머들의 투자를 받아 여러 게임들을 선보였었다. 내가 최근 클리어한 언더레일이라는 게임도 한 명으로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인디 RPG다. 비록 다른 RPG들처럼 폴아웃, 시스템 쇼크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자신의 고집을 통해 무언가 숙성된 냄새를 푹푹 풍기는 개성 넘치는 게임이 되었다. 언더레일은 인류가 지상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해 지하로 숨어들어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지하 철도를 기반으로 삶의 터전을 확장해나가며, 소규모 갱단들에게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모든 지하철역을 잇는 체계가 있다. 게임 본편에서 직접적으로 다루는 지역은 '남부 언더레일'이며, 주인공은 사우스 게이트 스테이션에 막 들어온 신입이다. 플레이어는 이 신입이 되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다가, 다른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 점점 심각해지는 세계에 깊숙히 개입하게 된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능력치, 스킬, 퍽 등을 선택하게 되고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서서히 능력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다. 내가 했던 플레이나 다른 사람이 했던 플레이 소감 등을 종합해보면 플레이어가 성장 과정에서 찍은 스탯이나 스킬이 큰 영향을 주고, 때문에 플레이하는 사람이 신중히 고민을 하고 게임에 진지하게 임하도록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잠입 스킬은 쓰레기라고 했던 반면, 나는 잠입 스킬에 꾸준히 투자한 덕에 마지막까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제작 스킬의 이점이 너무나 커서 떨치기 힘들다는 평도 있었다. 능력치나 스킬에 따라 쓸 수 있는 퍽이나 기술이 꽤 달라 운영법이 달라지는 점도 진지한 육성을 이끄는 요소 중 하나다. 무엇보다 어려운 전투 때문에라도 각 잡고 플레이해야 한다. 난이도가 보통까지는 몰라도 어려움부터는 버거워진다.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혼자 전투하는 식으로 풀어나가야 하며, 수류탄이나 체력 회복약 같은 아이템도 꽤 긴 재사용 대기시간이 있어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는 것 말고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는 혼자인데 적은 대여섯 이상인 경우가 빈번하며, 치명적인 상태 이상으로 내 턴을 없애버린 후 순삭 하는 경우가 많고 자기들끼리 시너지를 내기도 해서 전투의 난이도는 아주 높은 편이다. 맷집을 기르거나 스킬을 잘 골라 그 분야에 따른 전략을 세우든지, 아니면 지뢰와 곰덫을 잔뜩 이고 다니며 전투 시 예측되는 동선에 깔아두는 플레이가 요구된다. 퀘스트는 나름 복잡하게 짜두었다. 메인 퀘스트가 있지만 그 메인 퀘스트 사이사이에 해결해야 하는 서브 퀘스트들이 있고 서브 퀘스트들도 당면한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 생각 없이 내린 선택이 나중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초반에 어려운 조건을 달성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단서를 주는 등... 여하튼 RPG를 (겉핥기로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호평할 구성을 갖췄다. 여러 가지 다룰 이야기는 많지만 특히 최종 지역인 Deep Caverns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스토리 상 마지막 던전에 해당하는 이곳은 설정상으로도 심각하게 뒤틀린 마굴이며, 임무 목표를 봐도 쉽게 해결할 만한 단서 하나 주지 않는다. 적들은 너무나 강력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너무나 복잡하다. Deep Caverns를 클리어하려면 지역에 있는 모든 상자를 뒤지고, 모든 문서를 읽고, 숨은 채로 지역을 수십 번 오가야 한다. 너무나 복잡하고 불편해서 남부 언더레일과 Deep Caverns가 다른 게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신 클리어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의 쾌감도 그만큼 강하다. 워낙 여운이 깊어서 돌아오는 길, 이후의 이야기, 엔딩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다만 인디게임이라 그런지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기엔 부족한 점이 보인다. 단축키와 아이템의 각 용도를 외워가며 하는 건 하드코어 RPG라 그렇다 쳐도, 문서를 비교해 가며 깨야 하는데 읽은 문서가 따로 저장되지 않아 스크린샷으로 찍어놔야 한다든가, 전투가 너무 자비가 없어서 장소 이동을 통해 도망치며 해야 한다든가 하는 불편함이 있다. 게다가 경험치 시스템이 약간 이상한데, Oddity (괴물의 부위 중 연구할 가치가 있는 부위, 구 세계관과 관련된 물건, 현 세계관과 관련된 물건 등 견문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찾아 경험치를 얻는다는 컨셉은 좋으나 Oddity 중 취지와 별 연관이 없는 물건이 좀 많았다. 그리고 게임 내 콘텐츠랑 상관없이 평범한 배럴 같은 곳에 넣어두는 경우도 많아서, 퀘스트만으론 부족한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지기도 했다. 진지한 리뷰가 아니고 감상문이나 이 정도만 하고 결론을 내리자면, 언더레일은 힘들지만 RPG 게이머라면 한 번쯤 건드려볼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다만 시스템이고 영어고 뭐고 꽤 어려워서 이런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도망가는 게 좋다. 디비니티,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같은 게임들이 RPG 장르에 대한 취향을 가리는 마지노선이라면, 언더레일은 그 기준을 훨씬 더 넘어간 게임이고 웬만한 RPG 매니아들도 싫어할 정도로 전투와 파밍에 치중된 게임이기도 하다. 나는 아주 재밌게 했지만 추천하기는 어렵고... 할지 말지는 읽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