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완성도 높은 보드게임과 정말 개 그지같은 코드 쪼가리의 절묘한 혼합물. 일단 해보면 고작 보드게임이 이렇게 세밀하고 다채로운 모험, 그리고 전략적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데에 감탄하게 되지만,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든 규칙을 가지고 이토록 너절한 코드 쪼가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에 대해 분노하게 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자체는 적당히 굴러가고, 원본이 되는 보드게임이 3시간에 걸쳐 수작업으로 셋팅을 준비해야 하는 단계를 여기선 프로그램이 대신 수행해 준다는 아름다운 장점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추천할 만한 게임입니다. 뭣보다 원본이 되는 보드게임의 가격이 20만원 정도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죠.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정말이지 절묘하다고 밖에 표현이 안되는 난이도 설정과, 그리고 언제나 허를 찌르는 듯한 시나리오의 구성입니다. 어느 정도 장비가 넉넉해지기 전에는 정말 각자가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수를 골라야 겨우 미션을 깰 수 있게 해놨고, 그렇게 조금 익숙해졌다 싶을 때쯤에는 정말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그 익숙함을 무너뜨립니다. 덕분에 비슷한 미션도 거의 없고, 매번 닫힌 문을 열 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은근히 기대하게 만들죠. 다만 이 너절한 코드 덩어리와 만들다 만듯한 튜토리얼은 정말이지 칭찬해줄 수가 없습니다. 가령 이놈의 게임은 어째선지는 모르겠는데 한 30초에 한번씩 내 화면을 멋대로 시계방향으로 돌리려고 하는 이상한 충동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도대체 왜 이 기능을 끄는 기능이 옵션에 없는 걸까요? 물론 그렇게 돌아간 화면은 버튼 하나만 눌러도 다시 원래대로 돌릴 수 있습니다만, 여러분이 게임을 하고 있는데 누가 정기적으로 와서 화면을 돌려놓고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진짜 이보다 거슬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길드마스터 모드... 이건 정말 드럽게 재미없습니다. 처음에는 캐릭터 하나만 익히는 것도 충분히 골치아픈데 온갖 캐릭터를 다 해보라고 들이미는 건 둘째치고, 그냥 순수하게 시나리오 구성이 본편만큼 완성도가 높질지가 않습니다. 본편이 전원이 힘을 다 합쳐서 될까말까한 그 타이밍에 아슬아슬하게 성공하는 느낌이라면 길드마스터모드는 다 같이 소풍 나온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냥 평범한 노가다식 턴제 rpg에는 흔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런게 하고 싶으면 굳이 이런 너절한 그래픽 찌꺼기 말고도 달리 좋은 게 많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완성도 높은 보드게임의 맛이 궁금하다면 추천드립니다만, 솔플용이라면 다소 애매합니다. 플레이어 한 사람이 캐릭터 하나를 조종하는 걸 전제로 설계된 게임이라 머리도 좀 아프고, 뭔가 여럿이 할 때의 그 맛이 안 나더군요. 다만 플레이타임이 다소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해괴한 취미가 맞는 친구들이 여럿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결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