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천천히, 그러나 착실히 진행되었다. 우측의 잔해를 모두 정리했고 남은 건 좌측에 있는 적의 본거지 뿐이다. 명령을 내리기 위해 깃발이 꽂힌 바리케이드로 달렸다. 긴 거리를 달리다보니 말이 지쳐버렸다. 도착했을 때는 곧 해가 질 시간이 되었다. 할 수 없이 놈들과의 마지막 전투는 다음 날로 미뤘다. 그 날 밤 뜬 달은 유난히 크고 붉었다.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견고한 방어선은 붉은 달 아래 나타난 거대한 놈 두마리에게 처참하게 무너졌다. 용맹한 기사들도, 날렵한 궁수들도 후퇴를 거듭하며 쏟아져나오는 놈들에게 하나 둘 당해버렸다. 그동안 쌓아왔던 나의 왕국을 한 순간에 무너뜨려버린 나의 우유부단함을 원망하며 놈들에게 강탈당해 멀어지는 왕의 상징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곧 눈꺼풀조차 무거워졌다.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입을 열었다. "왼쪽 다 터졌는데 오른쪽 끝에서 놀고처먹지 말라고 멍청한 백성새기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