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푸념을 안 쓸 수가 없고 스포일러 태그로 때우기엔 분량이 많을 것 같다. 스포 당하기 싫으면 걍 넘기되 하나 단언할 건, 이 게임을 어떻게 평하든 반드시 스토리는 총점을 한 단계 깎아놓을 것이다. 기본적인 짜임새는 양호하다. 다만 스토리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역치는 넘긴 완성도이고 칭찬할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극찬할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 부분은 없다. 나로서도 스토리만 빼고 이전에 했던 3리메와 대동소이한 느낌이었고 스토리가 개같아서 수작이라 평하긴 아까운 게임이다. 그래픽은 전작보다 확실히 좋아졌으며 배경 곳곳의 식생 구현에 의외로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칭찬할 부분. 모델링 스타일은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더 말끔해졌으며 주인공 일행의 외모는 준수하다. 캐릭터는 전작의 리스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파르미나의 외모가 잘 뽑혔고, 캐릭터성 면에선 괜찮게 나왔다. 특히 카리나의 감초 역할이 확실하고 주인공보다 더 리더 같을 때가 많은 모틀레아의 면모가 돋보인다. 사운드는 전작보다 존재감이 떨어진다고 느꼈지만, 전투 시스템 면에선 좀 더 자유도가 늘었다. 정령기라는 일종의 특수 장비 변경을 통해 언제든 자유롭게 클래스를 변경할 수 있고, 어빌리티와 특기를 구성하여 자신만의 최강의 조합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뭐 난 그렇게까지 깊이 파진 않았지만. 전투 자체의 재미는 평범하고 전투 난이도는 세분화가 되어 있으며 어떤 난이도든 크게 어렵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템 사용이나 캐릭터 행동의 제약이 매우 낮고 전반적으로 캐릭터의 행동이 민첩하기 때문이다. 단 동료 AI 수준이 썩 좋지 않은 것이 단점. 특징이 있다면 일단 물질적으로 매우 풍족하다. 돈은 썩어 넘치고 아이템도 그렇다. 그리고 웬만한 게임에선 나중에나 풀어줄 2단 점프, 점프 중 대시 등이 초반부터 모두 뚫려 있고, 맵상에서 막혀서 못 가는 곳도 없다시피 하여 이동이 시원시원하다. 이 정도면 대부분 요소는 간단히 짚은 것 같고 이제 가장 큰 문제인 스토리. 변론의 여지가 없다. 개쓰레기다. 대체 누구를 타깃으로 하였고 누가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만든 스토리인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전작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왕도였다. 왕도란 무엇이냐, 그야말로 정석. 그 장르의 바이블. 뻔하다, 질린다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적어도 작품을 망치는 일은 없는 저점이 보장된 장치. 그러나 이 게임은 그렇게 가는 듯하면서, 그렇게 갈 수 있었으면서, 끝내 비틀었고 그 덕에 게임이 비틀렸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런 취급을 받는 거지, 처음 나왔을 때는 분명 획기적이었다. 그러니 대중에게 인정을 받았고, 그렇게 보편성까지 지니게 된 것이다. 업계 표준이란 게 다 그렇게 대단한 존재다. 나도 대부분의 JRPG 스토리를 그냥 왕도다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배부른 소리였다는 걸 깨닫게 해준 게임이었다. 그냥 남들, 아니 남들도 아니지 너희가 했던 거 복붙만 했어도 최소한 욕은 안 먹었을 거를 무슨 자신감으로 이지랄을 떨어놨을까? 초반부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세계에는 마나라는 게 있고 이는 세상이 원활히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주기적으로 아이의 영혼을 바쳐야 한다. 만약 안 바치면? 재앙이 닥친다. 마을이 망하는 지름길이다. 때문에 페어리와 각 속성의 대정령이 협의하여 영혼을 바칠 아이를 뽑는데 그를 마나의 아이라 칭하고, 이들이 영혼을 바칠 마나의 나무까지 인도할 수호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마나의 아이는 세상을 위해 희생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초반에 플레이어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건 마을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마나의 아이가 되고 싶어 하고, 선정되는 사실을 영광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심지어 부모도! 게다가 프롤로그 부분에선 그렇게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캐릭터를 먼저 조종한 후에 보게 되는 내용이라서 더욱 기괴하다. 희생자가 아이라는 점에서 심히 악랄하지만, 딱히 세뇌나 교육이 행해지는 모습도 없고 아이들 태도가 소극적인 것도 아니라서 전체주의적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뭐하며, 사실 심오한 주제인데도 스토리 내에서 그다지 깊게 고찰하지 않는다. 그냥 중간에 이와 관련된 갈등이 붕 뜨면서 사라졌다가 막판에 '이제 안 바쳐도 되도록 바꿨음'으로 갈등 요소 자체를 쳐내버리며 끝낸다. 이렇게 끝내는 게 문제란 건 아니지만, 중간에 흐지부지되기 시작한 것부터 소재 활용을 제대로 못 했다는 방증이다. 이는 주인공인 발과 반동 인물인 좆린, 두 캐릭터 모두에게 문제가 있어 발생한 현상이다. 우선 주인공은 처음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나의 아이가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시한다. 오죽하면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인 히나가 마나의 아이가 되었는데도 그저 같이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에만 기뻐한다. 하지만 히나가 역시 자신을 좋아하며, 초반과는 달리 주인공과 오랫동안 같이 살고 싶어하면서 망설이게 된다. 그러다 좆린의 '마나의 아이가 영혼을 바쳐도 되지 않는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버리고, 히나가 영혼석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히나는 결론적으로 죽는다. 이게 문제다. 히나가 주인공의 곁을 떠나게 된 순간부터, 주인공은 더 이상 마나의 아이의 희생이고 나발이고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좆린은 어떤가. 이 씹새끼는 프롤로그에서 자기 아내였나 연인이었나, 아무튼 반려자가 마나의 아이가 되자 이건 잘못됐다고 염병을 떨다가 자신의 고향 마을을 말아먹고 반려자는 석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주인공 일행과는 천연덕스럽게 접촉하지만, 이 부분을 먼저 하고 왔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이 새끼랑 순탄하게 갈 리가 없다는 것쯤은 깨닫게 된다. 재밌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플레이어에겐 좆린의 사고가 더 공감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좆린의 행보를 스토리 내에서 잘 풀어냈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을 텐데, 실패했다. 이 새끼는 그냥 너무 비호감으로 만들어 놓은 게 문제다. 사상은 옳을지언정 수단이 글러먹었다. 심지어 자기 아내의 고향 아이들이고 그 아내는 주인공과 특히나 친분이 있는데 보란 듯이 통수치고 히나를 영혼석으로 만들어 사실상 죽여버린다. 웃긴 건 자기도 잘 알고 실행한 계획은 아니라서, 그래놓고 최종보스한테 죽는다. 석상이었던 아내까지 같이 깨져버리는 건 덤. 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놈을 순도 100%인 싸패 새끼로 만들어 놓은 스토리 작가의 역량이 심히 의심된다. 게임이라서 그렇게 깊게 들어가진 않겠지만, 막말로 만약 아내 정상화시켰다고 해도 뭐 어떻게 설명하려 했을지 의문이다. 주인공을 죽여버렸으면 모를까. 자기 아내와 친한 동네 아이 1명을 죽이고 1명을 극도로 불행하게 만들면서 부활시켰다 하면 대체 누가 반길지. 게다가 끝까지 밉상으로 가는데 죽을 때조차 '용서를 빌지는 않겠다'며 뻔뻔한 모습을 보여주고, 막판에 최종보스 상대로 고전하고 있을 땐 환영으로 나타나 '벌써 포기하려는 거야?' 따위의 대사나 치게 만들고 있다. 지금 이 사달이 니새끼 트롤링 때문에 벌어진 판이예요, 씨발아. 이 대사가 나오는 게 맞아? 사실 해피 엔딩이기만 했으면 암만 과정이 병신 같아도 이렇게까지 주저리주저리 욕하진 않았을 거다. 해피 엔딩조차 아니다. 정확히는 세상은 행복해졌는데 주인공은 바라던 행복을 쟁취할 수 없었다. 주인공과 히로인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뚫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왕도로 끝낼 수도 있었으면서 굳이 그 길을 외면하고 보여주고 싶었던 게 이런 불쾌한 스토리란 말이냐? 게임 내적으로는 전작보다 나아진 부분이 많았는데 스토리가 너무 좆같아서 내 안에서의 평은 전작보다 낮다. ㅅㅂ 스토리가 평타만 쳤어도 진짜 하다못해 해피 엔딩이기만 했어도 될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