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를 좀 다닥다닥 달아야 한다. 0. 제값으로 사지 말아야 함. 1. 디지몬을 매우 사랑해야 함. 2. 전작(디지몬 스토리 시리즈 말고 월드 시리즈)을 해봤어야 함. 3. 그래픽을 크게 중시하지 않아야 함. 4. 전투에 많은 걸 바라지 말아야 함. 5. 참을성이 많고 잠이 적어야 함. 위의 6개가 충족되면 할인 좀 할 때 업어서 해볼 만함. 제값 주고 산다? 이걸? 어림도 없음. 솔직히 이거 재판할 때 자신만만하게이 가격으로 내는 거 보고 개황당했음. 정작 나는 제값 주고 샀고 5번도 충족하지 않지만, 그냥저냥 괜찮게 했기 때문에 일단 엄지는 세워준다. 단, 게임 자체로만 보면 하자가 많은 물건이다. 우선 그래픽. 물론 예전 게임을 재탕한 거라지만, 사실 그때부터 좋은 소리 못 들었음. 그러니 지금은 더 못 듣겠지. 보면 알겠지만 처참함. 품질 자체가 좋지 않아서 모니터 클수록 더 처참함. 스팀덱이나 화면 작은 노트북, 아님 스위치판 있으니 그거로 하는 게 그나마 눈속임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사슬보다도 늦게 나온 게임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간간이 컷신도 나오는데 헛웃음만 나온다. 시스템. 솔직히 디월 시리즈의 시스템은 정말 나쁘지 않음. 디월1은 진짜 그 옛날 벽돌 감성을 옮겨온 듯한 충격이었음. 정말 단순한 비교로 가장 대중성 높은 생명체 육성 RPG인 포켓몬을 예로 든다면, 포켓몬은 제깍제깍 밥 주거나 화장실에 데려가야 하지는 않잖아? 디지몬 월드 시리즈는 그게 시스템의 가장 기본이 됨. 같은 생명체 육성 RPG라지만 지향점부터 둘이 확연히 다른 거지. 포켓몬과 비슷한 감성을 원한다면 오히려 디지몬 스토리 시리즈로 가야 함. 대신 디월 시리즈는 이번엔 2마리를 기를 수 있긴 하지만, 포켓몬과는 달리 소수 정예로 키움. 박스 같은 개념도 없고, 포획 개념 역시 없으며, 디지몬 가짓수도 훨씬 적은 편. 사슬에 비해서도 적음, 사실 아무리 많아도 다 얼굴 보기란 쉽지 않고 어차피 키울 법한 인기 디지몬 라인은 정해져 있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음. 적어도 육성 면에 있어서는 충분히 재미를 붙일 만하다고 생각함. 그러나 수명이 있고 계승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사망전생식의 육성이 계속 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파트너와 진득하게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안 맞음. 그리고 이 방식 자체가 일반적인 생명체 수집형 RPG와 비교하면 직관성이 떨어져서 처음 한 사람은 이게 뭔가 싶을 거임. 내 파트너가 왜 죽어? 근데 별수 없이 죽여야 하긴 함. 이런 게임이면 다양한 디지몬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게 당연함. 하지만 포획 개념이 없으니 이런 방식을 적용한 것이라 봄. 호불호는 탈 수밖에 없겠지만. 또한, 망한 마을을 디지털 월드 곳곳에 있는 디지몬들을 데려와서 부흥시키는 것이 메인인데 난 이거 1때부터 생각했지만, 진짜 잘 만든 시스템이라고 생각함. 디지몬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잘 살릴 수 있고, 뭣보다 대부분의 RPG는 모험을 하면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마을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방식은 드물다. 매우 특색 있는 시스템 중 하나. 다만, 디지몬이 마을로 돌아오면 뭔가 역할 하나는 줘야겠는데 사실 마을에 둘 만한 시설로 구상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아서 개발 난도를 높이는 원인 중 하나로 보이기도 한다. 일단 이번 작품은 꾸역꾸역 집어넣어서 모든 디지몬이 뭔가 역할 하나씩은 갖고 있긴 하다. 뭐 마을을 더 늘려도 되고 뭣하면 투기장으로 싹 밀어넣으면 되니 이 시스템만큼은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근데 문제는 전투가 존나 재미없음. 진짜 더럽게 재미없음. 이게 예전부터 이어온 시리즈 전통인 건 맞거든? 문제는 이 방식이 요즘 감성에는 너무 안 맞는다는 거임. 요약해서 말하면 기본적으로 방치 + 쿨 차면 응원으로 오더 게이지 채우기 + 게이지 차면 필살기 + 가끔 방어. 이 정도가 전투의 전부임. 유저가 그때그때 사용 기술을 지시할 수 있긴 한데 그렇게 하느니 그냥 게이지 모아서 필살 쓰는 게 훨씬 효율이 좋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음. 그래픽과 연출이 받쳐줘서 보는 맛이라도 좋아야 할 판에 그조차도 후달린다. 거의 자동전투나 다름이 없는 셈인데 그런 주제에 템포는 또 느림. 전투가 재미도 별로 없고 유저가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데 오래 걸리기까지 함. 이거는 아무리 전통이라 해도 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것도 1에 비하면 나아지긴 한 거임. 1은 세세한 기술 지시를 할 수는 없었으니까. 유저 편의성은 저질이다. 우선 캐릭터 이동 속도가 좀 답답한 수준으로 느리다. 달리기 버튼이 있긴 한데 이거 있다고 게임 내에서 안 알려줌. 난 그래서 마지막 챕터 가서야 달리기의 존재를 알았음. 그리고 걷기/달리기 변환 방식이 아니라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하는 방식이다. 이동할 일 많은 게임인데 이게 뭔가 싶음. 원작에 없었다가 추가된 기능이라는 건 감사할 일이긴 한데 왜 굳이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하는 식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안 알려준다 하니 생각난 건데 이 게임은 따로 도움말이 없다. 처음부터 마을에 상주하고 있는 유년기 디지몬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봐서 시스템을 익히는 것이 주요 골자. 나쁜 시스템은 아니다만, 추가된 기능이라 그런지 달리기 기능을 알려주는 디지몬이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그리고 다 깼는데도 나 아직도 각 스탯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음. 특히 지성. 이거 높으면 뭐가 좋은 걸까? 힘은 평타가 세고 지성은 필살이 센 걸까? 어차피 키우다 보면 스탯은 전체적으로 다 올리게 되긴 해서 큰 문제는 아닌데 왜 아무도 안 알려주는지 모르겠음. 각 스탯이 뭘 의미하는지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나?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디지몬이 마을로 오면 주로 특정 시설 안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설은 건축소라는 시설에서 단계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시설을 업그레이드할수록 제공되는 기능이 많아 앞으로의 모험을 위해서는 사실상 필수나 다름없는 컨텐츠. 여기까진 좋다. 시설 업그레이드를 위해선 목재, 석재, 광석, 액체 총 4범주의 물자가 필요하다. 이는 맵을 돌아다니며 보이는 특정 포인트에서 채집할 수 있다. 여기까지도 좋다. 채취 포인트는 채취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으며, 높은 단계 물질일수록 잘 안 나온다. 또한 따로 인벤토리 창에서 자리를 차지하여 특정 개수 이상은 못 들고 다닌다.(텐트를 치면 낱개 단위를 묶을 수는 있음.) 여기까지도 괜찮다. 그런데 채취할 때마다 꾸역꾸역 디지몬의 모션을 봐야 한다. 따로 디테일한 채취 모션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돌려막은 모션. 그렇잖아도 느린 게임 템포를 더 느리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다. 여기서부터 좀 으응? 싶지만, 그래도 넘어갈 만하다. 문제는 여기서 나온다. 건축소가 특정 요건을 만족하면 하위 단계 물자 5개를 상위 단계 물자 1개로 바꿀 수 있다. 일일이 수동으로. 일괄변경? 그딴 거 없다. 리스트에서 매번 키 따닥따닥 눌러서 아래로 내린 다음에 전환 버튼 누르는 단순노동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함. 게다가 한 물질 카테고리에 단계는 10개 내외였나 아무튼 또 쓸데없이 많다. 그런 물질이 심지어 4가지나 된다고 씨발! 안 쓰면 시설 업그레이드가 너무 오래 걸려서 필요하긴 한 기능인데 하다 보면 진짜 답답하다. 상위 단계 물질을 분해해서 하위 단계 물질 5개로 다시 만드는 기능도 넣어줄 법 하건만, 이건 또 없다. 막막하다. 그나마 마을 내에서의 빠른 이동, 진화도장 시설 추가 시 진화 루트 확인 및 특정 디지몬 진화를 막는 게 가능하여 육성 편의성이 높아졌다는 건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원작부터 텍스트 처리가 밋밋했기에 반남 게임인데도 자막 퀄리티가 좋지 않다. 외곽선 처리조차 없어 나름 사이버틱한 배경에서 툭 튀어나와 있는 텍스트가 영 거슬린다. 뭐 원작부터 이랬으니 참작은 가능하다. 그래도 숫자는 디지털 숫자로 표기, L1 R1 키도 폰트를 다르게 해놓은 등 메인 텍스트만 좀 괜찮게 뽑았으면 훨씬 나았을 것 같다. 볼륨만큼은 그래도 넉넉한 편. 해보면 은근히 할 게 많아서 플레이 타임은 상당히 뽑아준다. 근데 이거 반 정도는 디지몬 수명이 정해져 있어서 중간에 죽고 다시 키워야 하는 시간이 있어 플탐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도 크다. 또한, 난이도가 의외로 높기 때문이기도 하며(그냥 입문 난이도로 하길 추천. 이것도 쉽지 않음.) 상술한 여러 부분의 하자로 인해 게임 템포 자체가 느리기 때문인 것도 있다. 그래도 그거 전부 감안해도 컨텐츠의 양적인 면에서는 합격점이다. 질적인 면에서도 평타는 친다. 메인 스토리 퀄리티는 나쁘진 않은데 스토리 자체만 놓고 보면 좀 짧은 편. 중간중간에 파트너 디지몬이 자꾸 죽어서 육성에 시간을 쏟는 시간이 상당한지라 크게 체감되진 않는다. 훈련의 효율이 나쁘다고 하지만, 최고 단계까지 업글한 후에는 꽤 괜찮으며 전투를 통한 육성은 후반으로 갈수록 효율이 떨어지는 건 둘째치고 상술한 것처럼 전투가 더럽게 재미가 없어서 견디기 힘들 것 같다. 훈련 역시 지루한 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이는 디지몬의 사망과 전생을 통한 스테이터스 계승이라는 시리즈 고유의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개발진 측에서 뭔가 생각은 해야 할 듯. 캐릭터는 준수하게 뽑았다. 동료 인간 캐릭터들은 무난하게 잘 뽑아냈고 루시도 매력적인 캐릭터. 메인 스토리 대사는 대부분 더빙이 되어 있다. 리디지타이즈를 오마주한 요소도 있지만(투기장 엔트리라든지) 그보다는 1편 오마주를 꽤 강하게 했다. 시작의 마을 BGM도 그렇고 1편 주인공이 아예 등장을 하니까. 리디지타이즈는 한국에선 접근성이 너무 낮아 해본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원작은 꽤 인기가 좋았기에 원작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세대라면 제법 감회가 새롭다. 아예 못해먹을 물건까진 아니지만, 평가가 낮은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므로(스팀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지만 점수제가 아닌 덕이 크다. 그리고 이렇게 IP 파워가 있고 재탕을 한 게임은 평가를 오롯이 믿으면 안 됨.) 맨 위에 적은 요소를 자신이 얼마나 충족시키는지 잘 고려하여 구매를 결정하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