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평점 : 7.0 / 10 지금 와서 몇 십년이 넘은 고전게임들을 하다보면 무엇보다 '불편하다' 라는 감정이 앞서게 됩니다. 난해하고 복잡한 조작체계, 한정된 뷰, 눈아픈 폴리곤 그래픽, 귀를 찌르는 칩튠 등..게임을 즐기기에 앞서 게임을 처음 접하는 첫 원시 상태를 향해 강제로 회귀시켜야할 정도로 고전게임과 현대게임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만큼 게임업계가 기술적으로 급격하게 진보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며, 현재 고전게임은 그 자체를 즐기려는 목적에서 벗어나 현대게임의 기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체험 해봐야하는 '교양' 과목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젤다의 전설 : 시간의 오카리나] 같은 작품은 3D 게임에서 유효한 시스템의 대부분을 혼자서 확립한 백과사전과 같은 작품이지만 2025년의 감각으로 이를 즐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야생의 숨결] 이나 [왕국의 눈물] 같은 걸출한 현대적 후속작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고작해야 젤다 시리즈의 팬들이 젤다를 좀 더 이해하고자 공부 하는듯이 파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엘든링] 으로 게임을 시작한 사람이 [다크소울 1] 이나 [데몬즈 소울] 을 하는것도 비슷한 맥락일 테지요. 쉽게 말하자면 고전 명작들의 미덕을 이어받아 현대적 감성으로 훌륭하게 재해석한 작품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오리지널에 집착할 필요는 없으며 참고 사항으로 해볼만한 가치 정도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2017년에 나온 [TUNIC]의 제작자는 조심스럽게 고전게임에 대한 회귀적 담론을 펼쳐놓습니다. 고전 게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기술력으로 고전게임을 '재현' 시키려는 미묘한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이죠. 즉 고전->현대 라는 사이클을 뒤집어 현대->고전 으로 흘러가는 실로 독특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젤다의 전설 주인공인 링크의 옛날 착장을 그대로 빼서 입은듯한 귀여운 여우와 탑뷰 젤다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쿼터뷰 메트로배니아식 맵 디자인만 봐도 알 수 있듯 고전게임들의 매카닉과 트릭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경심이 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게임의 목적 중 하나가 '가이드북 되찾기' 입니다. 옛날 패미컴 게임을 사면 얻을 수 있는 게임 설명서와 같은 것을 게임의 최중요 수집 요소로 여기고 있다는 뜻인데 이는 고전게임으로의 회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에 시야를 약간 올려야만 보이게 만든 상자라든지, 구조물 뒤로 보이지 않게 만든 숨은 길처럼 직접 몸으로 경험해야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들을 기억하며, 가이드북 페이지를 찾는 여정은 꽤나 즐거운 편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게임에서 쓸 수 있는 언어를 의도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입니다. 표지판에 적힌 간단한 정보부터 시작해서 세계관을 관통하는 중요한 정보까지.. 전부 실존하지 않는 그림문자를 통해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필연적으로 언어적 공백상태에 놓이고 결국 자신의 경험과 직관에 의지하여 게임을 진행해나가야 합니다. 언어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에 위에서 말했던 가이드북을 보다 자주 펼쳐보게 만들어 거기에 적힌 기호의 의미를 유추해나가야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죠. 즉 언어적 통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이드북을 보며 컨트롤러를 굴리는 고전게임의 방식으로 유도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러한 언어적 통제의 과정은 강제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불친절 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세계를 탐색하고 의미를 찾아내게 유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어드벤쳐 장르의 궁극적인 목적인 '탐험' 이라는 의식을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를 감추고 행동과 감각적인 기호를 위주로 배치함으로써 플레이어는 보다 적극적이고 다각적으로 게임에 접근할 수 있게되기 때문입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진행 방향을 무작정 지시하고 장황한 언어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자격 미달의 몇몇 현대 게임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본질적인 재미가 진하게 배어있는 게임입니다. 그러나 고전게임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비직관적인 요소까지 그대로 가져온 것은 다소 의문이 남습니다. 이는 대부분 제작자가 게임 속에 엄청나게 숨겨둔 히든 요소나 이스터 에그, 접근 가능한 더미 데이터에 적용되어 있습니다. 게임의 히든 요소들이 대부분 커맨드와 연관되어 있는데 이 커맨드가 너무 복잡해서 추론해내기 어려우며 게임의 자연스러운 진행과는 전혀 동떨어진 맥락으로 나타납니다. 코나미 커맨드나 격투게임에서 개발자가 장난으로 숨겨놓은 커맨드와 유사하게, 숨겨진 것을 발견하는 재미보다는 '이런것도 있지롱.. 개쩔지..ㅎㅎ' 같은 인위적인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요약하자면 [TUNIC] 은 언어적 통제를 통해 고전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미스터리한 탐험감각을 완벽하게 되살리는 동시에 고전게임의 비직관적인 히든 요소까지 그대로 들고온 희안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커맨드로 모든 것을 해결하게 만든 히든 요소들이 맘에 들지 않지만 반대로 이런 부분들을 맘에 들어하시는 분들도 분명 많으실 겁니다. 또 한편으로는 가이드북만 계속 펼쳐보고 머리를 굴려야하는 진행방식이 부담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때문에 고전게임에 목매는 제작자의 의도를 무조건 좋다라고 단정 짓기는 힘든 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전게임의 명암을 그저 '불편하다', '불친절하다' 로 간편하게 퉁칠 수 없는것 또한 사실입니다. 고전게임에는 우리가 어느 순간 잃어버리거나 혹은 스스로 버렸던 순수한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야숨 이후의 젤다 팬들이 시간의 오카리나를 해보거나 엘든링 팬들이 다크소울 시리즈로 회귀하듯, 시간을 거슬러 옛날 게임을 하러 가는 이유 또한 이와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겠죠. [TUNIC] 이라는 걸출한 '고전게임 시뮬레이터'를 통해 잃어버린 옛날 게임 지도 조각들을 찾아보며 이를 스스로 직접 경험해보고 판단하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