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휩쓸린 민간인이 되어 생존하는게 목표인 생존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하면서 느낀 감정적인 몰입도는 수많은 긍정적인 평가와 명성답게 인상적이었으나, 그 밖의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별로였던 게임이라 추천하기가 망설여졌던 게임이다. 당장 나부터도 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언젠가 꼭 해봐야지 했다가, 막상 플레이하면서 실망한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추천하는 이유는 이 게임만의 장점이 너무 확고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일단 다른게 다 깎아놓은 평균을 장점 하나로 만회한 느낌이라, 비추천까지 줄 정도는 아닌 약한 추천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것 같다. 👎불친절함 & 불편함 내가 이 게임을 추천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면 우선 이 게임의 아쉬웠던 부분부터 꺼내야한다. 이 게임의 명성을 알고 있던 나같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게임을 처음 시작하고 10분 내에 실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게임은 튜토리얼이 아예 없다. 수집, 제작, 상호작용 등 모든 조작법은 직접 알아내야 한다. 당연하게도 NPC들과의 상호작용 역시 눈치껏 분위기를 잘 읽거나, 공격적인지 방어적인지, 이렇게하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전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심지어 첫 시작 화면에서부터도 파이널 컷과 스토리로 왜 나뉜건지, 뭐부터 시작해야 입문자에게 좋은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그나마 입문자가 할만한 시나리오를 잘 골랐고, 조작법과 NPC들도 대충 알았다면, 이제 게임 플레이 전반에서 말 그대로 불편하게 만든다. 생존 게임이다보니 수집과 제작이 반드시 포함되는데, 수집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 전쟁 중이라 재료 자체도 적고, 생존 게임에서 가방 칸과 겹치는 수량이 제한적인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수량이 너무 적다. 많이 필요할땐 30~40개가 넘게 필요한 나무와 잡동사니는 각각 가방 한 칸에 꼴랑 2개, 4개 밖에 못 넣고, 대부분의 캐릭터는 가방 칸이 10칸 내외인데다, 수집하러 나갈 수 있는건 딱 한 명 뿐이고, 나무 말고도 수집할 물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수집도 생산도 진행이 더디다. 또한, 캐릭터는 동시에 하나의 행동만 할 수 있는데, 여러 캐릭터가 겹치면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계단에서 두 캐릭터가 마주치면 동시에 움직이는게 아니라, 하나가 다 이동해야 나머지가 이동한다. 음식을 먹을 때도 두 캐릭터로 음식을 먹으라고 지시하면, 한 캐릭터가 다 먹고 나서 다른 캐릭터로 다시 먹으라고 해야한다. 행동 예약 기능따위는 당연히 없기 때문에, 다 먹을때까지 기다렸다 나머지 캐릭터로 실행해야한다. 여러개 만들면 해결되긴 하지만 또 수집이 발목을 잡기 때문에 악순환이 이어지며 게임을 피곤하게 만든다. 👎밸런스와 랜덤성 밸런스와 랜덤성은 굳이 따지자면 호불호가 갈릴 요소지만, 다른 설정으로 여러번 플레이하는 진성 고인물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모르고 엉망인 밸런스와 어려운 상황들을 경험한 입문자나, 그냥 게임 엔딩만 보려는 다수의 일반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확실한 불호 요소이기에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이 게임의 아이템이나 생산 시설은 종류가 많지 않아서 특정 품목이 효율이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준이 아니다. 진짜 밸런스 문제는 고유한 능력치를 가진 캐릭터들에서 발생한다. 모든 캐릭터는 달리기가 빠르다거나 전투에 강하다는 등의 고유한 패시브가 있고, 전투력, 속도, 회복력, 성향, 가방 용량 등의 공통 능력치가 있다. 문제는 제작자가 의도했겠지만, 캐릭터들이 생존에 매우 좋거나 나쁘게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마르코라는 캐릭터는 15칸의 가방에 부상이나 질병 회복 속도, 전투력, 멘탈도 양호하며, 수집에 능하다는 특성으로 수집 속도도 빠르고 20%를 추가로 습득한다. 반면, 시비에타라는 캐릭터는 전투력, 회복 속도, 멘탈, 심지어 가방 칸도 8칸으로 모든 능력치가 독보적으로 낮다. 파이널 컷을 선택해서 처음 플레이하는 사람 중, 마르코를 선택한 사람과 시비에타를 선택한 사람의 플레이 경험의 차이는 비교가 불가한 수준이며, 시비에타를 선택한 사람의 대부분은 제작자의 의도는 관심없고 불쾌한 경험으로 남은 채로 게임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생존 게임에서의 랜덤성은 흔히 질병이나 부상을 당하느냐, 회복되느냐 정도인데, 이 게임도 물론 그런 요소가 있지만, 가장 큰 랜덤성은 바로 지역이다. 이 게임엔 파밍할 수 있는 수많은 지역이 존재하는데, 전부 등장하는게 아니라 랜덤하게 등장한다. 심지어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벤트도 여러개 중 랜덤이다. 예를 들면, 슈퍼마켓에서는 군인이 등장하는 이벤트와 약탈자가 등장하는 이벤트가 있고, 랜덤으로 하나만 등장한다. 문제는 이벤트에 따라 플레이의 쾌적도가 너무 달라진다. 약탈자 패턴은 슈퍼마켓을 같이 털기 때문에 내가 수집할 물자가 줄어들고, 군인 패턴은 내 행동에 따라 소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을 편하게 진행 가능하다. 역시 입문자나 대다수의 경우 한 번만 플레이하기 때문에 이런 랜덤성에서 운이 나쁘다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생존' 게임 그럼에도 추천을 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 게임이 '생존' 게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재미있는 생존 게임들은 확실히 많지만, 어디까지나 생존 '게임'이기 때문에 사냥하고 수집하고 생산하고 말 그대로 생존을 게임처럼 하는게 대부분이었다. 이 게임도 역시 게임이기 때문에 수집하고 생산하는 행동을 하는건 맞지만, 생존에 더 무게가 실린 게임이라 그런지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제작자의 의도가 '생존' 게임이라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게 맞다면 앞의 아쉬운 부분이 어느 정도는 해소된다. 만약 당신이 진짜로 전쟁 속에서 살고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는게 맞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튜토리얼 따위는 없고, 건물은 폭격에 부서지고, 음식과 물자는 적기 때문에 행동이 제한되며, 수집도 힘들 것이다. 슈퍼마켓에 가도 군인을 마주칠지 약탈자들을 마주칠지 아무도 모르며, 당신의 능력 역시 천차만별이니까 무조건 밸런스를 맞추지 않았다고 하면, 여전히 '게임'으로서는 살짝 아쉽지만 '생존'으로서의 정체성은 살아난다. 게다가 모든 캐릭터들의 사진을 실존 인물인 개발자나 직원들, 그 가족들 사진을 그대로 갖다 썼는데, 이게 참 묘하게 사람이 게임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앞서 말한 최하위권의 능력치를 가진 시비에타라는 캐릭터를 식량만 축내며 쉘터 방어도 못하고, 수집도 못하는 쓸모없는 캐릭터로 가차없이 죽이거나 내쫓으면 그만인데, 이게 실존 인물의 사진을 봐서 그런지 뭔가 굶기거나 다치게하면 미약하게나마 괜히 죄책감이 든다. 아이들이 팀에 추가되면 더 심한데, 밤에 수집나간 어른이 다쳐서만 돌아와도 아이 우는 소리가 온 집안에 퍼지는데 해맑은 아이의 실제 사진을 보면서 들으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괜히 미안해질 정도다. 더 나아가, 현실적으로 고민해야하는 상황들이 자주 나온다. 대표적으로 노부부가 사는 집에 가보면, 많은 물건들이 전부 사유재산인데 그냥 둘 수도 있지만, 훔치거나 죽이고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게임이라도 저항의지가 없는 노인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약탈하는건 일단 심리적인 거부감이 한 번 막아주고, 그럼에도 저질렀다면, 캐릭터의 멘탈과 주변 캐릭터들의 멘탈도 같이 갈려나가는걸 보면서 플레이어 역시도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런 의도적인 밸런싱이나 디자인을 바탕으로 게임 전반의 연출을 상당히 공들여서, 실제 전쟁에서 '생존'하는 민간인이 된 것 같은 게임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는 느낌이었다. 👎버그와 번역 품질 앞의 세 가지의 장단점은 서로 섞여서 그럭저럭 괜찮은 게임이었다는 느낌이었지만, 이 버그와 번역만큼은 혼자 모난 부분이다. 이미 10년도 더 지난 게임이라 그런지 그냥 버그가 있네 하고 넘어가는 수준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게임에 상당히 몰입하다가도 깨는 동시에 게임을 추천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라는 느낌이었다. 모든 도전과제를 완료하면서 겪은 버그는 엄청나게 많지만 대표적으로, 특정 물건을 가져다주면 보상을 가져가라고 하는 퀘스트에서, 물건을 갖다주고 보상을 가져가니까 갑자기 왜 훔쳐가냐면서 뜬금 강도 취급하고 캐릭터의 멘탈도 깎인 어처구니 없는 버그가 있었다. 토론장을 살펴봐도 이런 버그를 겪은 사람이 없는걸로 봐서는 오래된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새로운 버그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아무 것도 안하고 파밍중인데, 갑자기 영역을 침범한걸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보이지도 않는데서 인식하고 달려오는 등 자잘한 버그가 수도 없이 많고, 캐릭터간의 상호작용 시 모션이나 판정이 불확실한게 많아 여기서 파생되는 버그가 상당히 많다. 번역의 경우, 한글 지원이라고 되어있지만 차라리 영어로 하는게 더 편할만큼 번역 상태는 수준 미달이며, 나름 개선된 한글 패치가 있긴 하지만, 미번역된 부분도 많고, 진짜 영어만 그대로 옮겨놓은 부분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환자나 아이에겐 음식을 먹여줄 수 있는데 '자네 뭔갈 먹어야 해'라는 말을 한다. 서로 남남인 환자에게 하면 자연스럽겠지만, 아이에게도 저런 말을 한다면 잘 되던 몰입도 갑자기 확 깬다. -정리- 유명세에 비해 게임 자체의 완성도나 재미는 떨어지는 편이다. 버그도 많고 번역도 조잡하고, 튜토리얼도 없고 게임 자체가 불친절하고 불편함 투성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 게임이 워낙 유명하고 좋은 평이 많아서 추천을 주는게 아니며, 절대 생존의 재미를 살린 게임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생존의 처절함과 도덕성을 저울질하며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 있는 잔잔하고 어두운 게임이다. 옳고 그른것에 대해 평소에도 생각해보길 좋아하고, 감정적으로 풍부한 사람들일수록 울림이 클 게임이다. 물론 그 외의 단점이 너무 많은 게임이니, 다른 요소에 대한 기대를 아예 버리고 전쟁 속에서 민간인으로서의 생존에만 초점을 맞춰볼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